체코생활

새로운 둥지로 옮기기

아호이호이 2024. 4. 9. 20:11

2023년 겨울, 꾸비와 나는 남부모라비아(jihomoravský kraj) 지역의 한 마을에 아주 오래된 집을 계약하였다.

지금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브르노(Brno)에서 동쪽인 비슈코브(vyškov) 방향으로 자리 잡은 이 집은 사실 집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아주 오래된 벽과 지붕만이 간신히 그 집이 사람 살 수 있는 집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정도이다.

어쩌다 이 작은 마을의 이웃들을 마주치는 날이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할 일이 엄청 많지요?"라고 말을 덧붙이곤 한다.

브르노에서 이 새집까지의 거리는 서울로 치면 김포나 부천정도의 거리다. 브르노에 있는 꾸비의 회사까지는 차를 타고 정확히 25분 컷이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조용한 시골마을이지만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바로 대도시로 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와 시간에 우리는 바로 매료가 되어버렸다. 

 

 

*브르노는 모라비아에 속한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프라하는 체코의 중북부에, 브르노는 남동부즈음에 위치하여 프라하와 브르노는 약 205km 떨어져 있습니다.

프라하에서 브르노의 거리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브르노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깝습니다. 

 

지금 사는 브르노를 나와 브르노와 비슈코브(vyškov) 사이 저 수 많은 마을들 중 한 곳으로 이사를 간다. 출처:mapy,cz

 

 

우리가 이 집을 구경하기로 했던, 이 집과 우리와의 첫날은 체코에 대설특보가 난 날이었다. 낮이 짧은 체코의 겨울, 부동산 에이젼시와 꾸비와 나를 도와줄 꾸비의 엔지니어 친구 카렐까지 함께 우리는 이 집을 둘러보러 갔다.

눈발이 날리던 날 하늘은 허옇게 스산한 듯 흐렸고 유난히도 추웠다.

이 집은 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고양이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의기양양하게 마을을 내다보기 좋을 만큼의 뷰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남의 집 고양이들이지만 검은 고양이, 카오틱 고양이, 고등어, 턱시도 등의 여러 종류의 이 동네 고양이들이 자주 놀러 와 이 집의 가드를 자처한다.

 

부동산 에이젼시의 소개에 따라 집으로 들어가는 내내 깊게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지고 차가운 눈이 신발 안까지 들어와 양말까지 적시고 있었다. 집에는 내가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정원도 있는데 오래 방치된 데다 눈으로 덮여 도대체 어떤 해괴한 것들이 눈 밑에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스산한 날씨 탓이었는지 아니면 앞으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는 막연한 무서움 때문이었는지 이 집과의 첫날은 뭔가 으스스함도 마음 한편에 있었다.

 

돈을 모두 지불하고 드디어 새집의 열쇠를 받으러 간 날, 부동산에서 준비해 준 선물을 들고 어색하게 사진을 찍어주고 집에 관한 모든 정보를 묶은 거대한 서류철을 넘겨받고 드디어 꾸비와 나는 이 집에서 다시 여기저기를 둘러보느라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엔지니어인 꾸비는 집의 여기저기를 측량하기에 바빴고 나는 정원을 둘러보기에 정신이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라 아주 낡고 성한 것이 없다.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 새집에 공을 들여야 할지 가늠이 안된다.

기존 바닥을 파내고, 새 바닥작업을 하고, 방수작업을 하고, 벽을 허물고, 보수를 하고, 그 이후에는 단열을 해야 할 것이며

전기를 설치하고, 인터넷을 달고, 가스관을 해체하고, 배수관을 만들고

문을 달고, 창을 달고, 벽을 바르고, 나무바닥 작업을 하고, 화장실 타일을 깔고, 주방을 제작하고...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꾸비와 내가 둘이서 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챌린지 수준인 것이다.

 

 

But.. challenge accepted!

 

이 모든 것들을 끝내고 나서야 가구를 제작하고, 드디어 정원을 꾸미고, 식탁 위에 설치할 조명을 선택할 때 즈음이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기분이 들까?

 

눈에 파묻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던 이 집의 정원의 모습이 드러나고 걱정했던 찜찜하거나 해괴한 물체도 없었다.  그 위로는 초록초록한 이름 모를 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일단 부딪혀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작업들도 다 마칠 수 있겠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보상받을 수 있겠지?

측량도 미처 마치지 못한 상황에 이미 나는 소소하지만 나름 나만의 정원을 꾸밀 꿈에 잔뜩 부풀어 올라있었다. 이미 마음만큼은 베르사유궁전의 최고 정원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