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체코의 소박한 꼬쁘르(Kopr) 요리
유월, 이미 체코는 많이 더워지고 우리의 작업도 더위에 속도가 잘 안 난다. 요새 꾸비와 나는 벽을 부스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벽을 우르르 부수는 것이 아니고 쿠비가 벽돌을 하나씩 부숴서 내게 주면 나는 그 벽돌을 털어 다른 곳에 쌓아두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생각보다 기력도 안 난다.
너무 덥고 분진이 많아 문이며 모든 창문을 다 열어놓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 일하고 있는 창문에서 불쑥 옆집 야로슬라브아저씨가 나타나 Ahoj!~ 아호이! 인사를 하시며 "혹시 샐러드 좋아해?"라고 물으신다. 그래서 쪼르르 아저씨 계신 마당으로 뛰어나가 "샐러드 좋아하는데요."라고 하니 아저씨가 수확하신 버터상추를 하나 주시며 또 물으신다. 꼬쁘르도 좋아해?
꼬쁘르가 무엇이냐? 체코어로는 Kopr, 영어로는 Dill 딜이라고 불리는 허브이다.
한국에서 딜이 구하기 쉬운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엔 그래도 점점 한국에서도 알려지고 있는 듯하다.
이 딜은 미나리과의 식물로 독특한 향기가 있어 생선요리뿐만 아니라 각종 샐러드에도 많이 사용한다. 향기가 독특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 반면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는데 나와 꾸비는 둘 다 꼬쁘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바로 야로슬라브아저씨께 "Určitě máme radi~!" 우리 꼬쁘르 좋아해요! 라고 대답한다.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저씨가 하우스에 들어가시더니 꼬쁘르를 뿌리째 들고 나오신다.
허거덩.....
손에 한 줌 잡히는 허브를 생각했는데 무슨 나무한그루를 들고 나오시는 야로슬라브 아저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사 중인 집안에 놓을 데가 없어서 그냥 저렇게 두었는데 뒤에 있는 책상크기를 감안하면 이 꼬쁘르가 얼마나 큰지 가늠이 된다.
저걸 어떻게 해 먹어야 맛있게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가 있을까?
집에 와서 저 나무만 한 꼬쁘르를 토막토막 내어 가식성 있는 줄기만 떼어 시들지 않도록 종이봉투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저 큰 줄기는 버릴 거라 생각보다 먹을 것은 많지 않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모아놓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럽게 덥고 입맛 없을 때 향기로운 꼬쁘르는 입맛을 돋우는 식재료다. 그럼 이 많은 양의 꼬쁘르를 우리는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1. 차치키 오이샐러드
Tzatziki 차치키는 요구르트와 각종 허브와 마늘 올리브유를 넣어 만드는 그리스 전통의 요구르트 소스를 말하는데 워낙 맛있고 쉬운 요리다 보니 유럽전역에서 이 차치키를 만들어 먹는다.
요구르트와 딜의 조합이라 시큼하면서 상큼하여 여름에 더 먹고 싶어 지는 음식이다.
며칠 전에 티브이에서 유학파 연예인 정 모 씨가 자신의 레시피 요리인 것처럼 소개하여 엄청난 뷰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실 티브이였는지 유튜브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이 걸 그 연예인 이름을 따 누구누구 샐러드 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좀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유럽에서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것은 그분의 레시피가 아니고 유럽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음식이고 자주 해 먹는 음식이기를 알기 때문이다.
내 냉장고 사정을 보니 요구르트는 없지만 사워크림님께서 계시고 엄청난 양의 딜, 그리고 레몬이 있다.
나는 정통요리사가 아니고 야매요리사니 되는대로 만들어보겠다.
오이를 강판에 얇게 슬라이스 내어,
소금에 절여 놓아두었다가
면포를 놓고 오이의 물기를 제거해 준다. 개인적으로 오이 그대로 그냥 쓰는 것보다 이렇게 면포에 물기를 제대로 없애서 쓰는 게 훨씬 맛이 있다. (오이의 물기가 잔뜩 요구르트에 섞이면 맛이 있을까? 오이의 절여져서 꼬들 해진 식감과 물기 없이 유구르트나 사워크림에 섞였을 것을 생각하면 물기를 빼는 것이 좋겠지?)
사워크림 듬뿍, 대부분 식초를 쓰지만 나는 집에 레몬이 있으니 레몬을 꾹 짜서 넣어주고
꼬쁘르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듬뿍 넣어주고, 마늘도, 설탕도 조금 그리고 섞어준다.
잘 섞은 오이샐러드를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놓았다가 사이드로 같이 곁들여 먹으면 되는데, 사실은 빨리 먹고 싶어서 이 오이샐러드만 반 이상 먹어 치워 버렸는데
이 차치키 오이샐러드는 체코에 살면서 여름이 오면 꼭 해 먹는 것 중 하나이다. 역시 이런 여름에는 새콤 상큼 아삭아삭 향긋한 허브가 너무 잘 어울린다. 색이 하얘서 왠지 느글느글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요구르트를 쓰는 게 정석이고 나도 사워크림을 쓴 거라 상콤 그 자체이다. 유럽에 내가 좋아하는 냉면은 없지만 이 오이샐러드로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2. 꼬쁘르 넣은 오픈샌드위치
체코에서 빵을 흘렙 Chléb, 이 흘렙을 잘라 만든 오픈샌드위치를 흘레비츄끼 Chlebíčky라고 한다.
냉장고 사정을 보니, 오이, 삶은 감자, 아보카도, 라임, 적양파, 사워크림, 훈제연어가 있어 이 재료로 대충 나만의 흘레비츄끼를 만들어보았다.
아침 일찍 신선한 감자빵을 사 와 슬라이스 하여 프라이팬에 파삭하게 지져주고,
삶은 감자는 잘게 깍둑 썰어주고, (나는 처치곤란이라 많이 넣었는데 사실 감자는 안 넣는 게 더 맛있다.)
양파도 적당량 가루 내어 넣어주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훈제연어도 잘게 썰어 넣고,
사실 재료는 꼭 무엇을 넣어야만 한다는 공식은 따로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넣어주면 되는데 나는 사워크림과 꼬쁘르를 쓸 것이므로 연어와 양파 오이 라임정도는 꼭 넣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오늘의 주인공인 꼬쁘르도 많이 챱챱 썰어 듬뿍 넣고,
아보카도도 괜히 먹고 싶어서 썰어 넣고 기분이 좋아지는 라임주스도 꾹 짜서 넣어 새콤함과 향기를 더하고,
사워크림 듬뿍듬뿍 넣고 후추도 갈갈 갈아 넣어주고 간을 해서 잘 섞는다.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만 집어넣어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이 꼬쁘르의 향이 섞이니 너무너무 좋다.
빵 없이 그냥 막 퍼먹어도 맛있는 이 꼬쁘르 스프레드를 만들어서
아까 파삭하게 지져놓았던 빵 위에 그냥 올려서 먹기만 하면 완성이다.
펴 바르지 말고 듬뿍듬뿍 올려 오이도 슬라이스 해서 올리고 향긋한 꼬쁘르도 또 올려준다.
빵은 파삭하니 입안에서 부스러지고 새큼한 사워크림과 부드러운 아보카도의 식감, 짭쪼름름한 훈제연어와 아삭아삭 매콤한 양파, 그리고 라임향의 경쾌함.. 딱 여름에 찰떡이다.
그냥 다 때려 넣고 섞어 빵에 올려먹기만 하는 것이라 요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너무 쉬운데 너무 맛있어서 꽤 만족스러웠다.
오이샐러드에도 오픈샌드위치에도 그렇게 많은 꼬쁘르를 넣었는데도 아직 많이 남아 꼬쁘르 수프인 꼬쁘로브까를 만든다.
3. Koprová polévka 꼬쁘로바 뽈레프까 / 꼬쁘르 수프 (딜 수프)
체코 전통요리에는 크림베이스에 감자와 계란 꼬쁘르를 듬뿍 넣은 Koprovka 꼬쁘로브까라는 수프가 있다. 소스의 형태로 진덕 하게 만든 것은 Koprová omáčka 꼬쁘로바 오마츄까라고 하고 좀 더 묽게 수프로 먹는 것을 꼬쁘로브까라고 한다.
재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꼬쁘르, 양파, 감자, 생크림, 버터, 계란, 밀가루이다.
역시 양식의 기본은 버터, 버터 넉넉히 넣고 양파를 볶아준다
루를 따로 만드는 게 귀찮아 그냥 볶아주고 있던 양파에 밀가루 한 스푼 그냥 같이 넣어준다.
여기에 물을 붓고 생크림도 한 컵 붓고 큼직큼직하게 썰어놓았던 감자도 듬뿍 넣고 감자가 잘 익도록 끓여준다.
스톡으로 간을 하고, 꼬쁘르를 크게 듬뿍 넣어 주고 더 끓인다.
수프에 간을 하고 후추도 갈갈갈 갈아 넣어주고 대부분 여기에 삶은 계란을 잘라서 수프에 넣어 같이 끓여 먹던데,
나는 계란이 오버 쿡되는 것도 싫고 회색 푸르뎅뎅한 노른자가 눈에 보이는 것도 싫고 그 노른자가 풀어져서 돌아다니는 것도 싫어서 한꺼번에 넣고 끓이지 않고 계란은 삶아 썰어서 따로 준비해 놓았다.
잘 끓은 꼬쁘로프까에 보기 좋게 후추도 좀 더 갈갈 갈아주고, 계란을 먹을만치 넣어만 주면 완성.
심심하고 애기들이 좋아할 것 같은 맛이지만 그래도 꼬쁘르가 듬뿍 들어가 있어 느끼하거나 맹숭맹숭하지 않고
고소하면서도 향긋함이 있다. 여기에 샌드위치하고 남은 빵을 곁들여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이다.
꼬쁘르 신나게 먹고
일하느라 힘든 꾸비를 위해 케이크 구워서 바닐라 크림 듬뿍듬뿍 제철 여름 체리와 오디를 사다 올려 달다구리를 만들어 시원하게 냉장고에 쟁여 놓고 신나게 퍼먹으니 여름에 그 누구 부럽지 않다.
언젠가 달다구리를 할 때가 되면 몇 끼니의 꼬쁘르 식사를 제공해 주신 야로슬라브 아저씨께도 감사를 전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