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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체커플의 소통방법

체코생활

by 아호이호이 2024. 6. 3.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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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코에서 생활한 지가 10년이 넘었다.

체코어 잘하느냐고?

아주 잘한다고는 할수 없지만 여기서 생활을 하고 친구도 만들고 사업도 했기 때문에 체코어를 못한다고 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한번도 각 잡고 체코어를 공부한 적은 없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여기서 지내다 보니 8할은 생활을 하며 저절로 얻어진 것이 크다.

 

아! 사실 여기 온 첫 해에 기쁜마음으로 브르노시에서 무료로 하는 체코어 수업을 조금 들으러 다녀본 적은 있다. 일주일에 이틀씩 약 두세 달 다녔나 싶다.

 

혹시 브르노에 와서 생활하며 체코어를 무료로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봐 사이트 링크를 첨부한다.

이 링크는 외국인으로 브르노에서 살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곳으로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https://www.cizincijmk.cz/cs/

 

Centrum pro cizince - Centrum pro cizince JMK

T. Šarková, Skupina ukrajinských žen Pokaždé, když přijdu do Centra pro cizince, okouzlí mě přátelská atmosféra, čistota a pořádek, a také ochota pracovníků centra pomáhat. Moc děkuji Lilii Pinchuk za dobrou podporu Ukrajinců v 

www.cizincijmk.cz

 

그곳에 대다수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베트남인, 몽골인들이고 소수의 여기저기에서 온 한국사람(나), 일본사람, 스페인사람, 영국사람 등등이었다.

클래스는 EU에서 온 나라사람들을 위한 클라스와 Non EU로 나뉘어있었다. 이렇게 나누는 이유를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EU는 같은 유럽국가들로 그래도 비슷한 굴절어를 쓰는 유럽사람들이 아시아사람들에 비해 빨리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렇게 나누어놓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당연히 EU회원국 밖에서 온 나라 사람들로 되어있는 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반을 이렇게 나누어 놓은 것에 대해서는 다니면 다닐수록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반에는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이 있었는데, 러시아가 어떤나라냐. 같은 슬라브어계 언어를 쓰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러다 보니 나는 이해도 되지 않았는데 이들은 너무 빨리 이해를 하고 선생님과 농담을 하고 나만 빼고 다 웃고 있는 클래스.. 한술 더 떠 체코어 선생님이었던 뻬뜨르 스또얀씨는 체코어 실력을 빠르게 향상해 주겠다며 No English, Only Czech! 를 외치며 실수로 영어를 했다가는 벌금을 내자고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내 입을 완전히 오바로크 시켜버리는 사건이 되었다. 분명 내가 신청한 반은 기초반이었는데, 그 기초반에서 나는 겉돌기 시작하고 이내 이 무료 클래스에서 나오게 되었다. (꽤 오래되어서 아마 다른 선생님으로 교체되었거나 커리큘럼 자체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러쿵저러쿵 내 일에 바빠 시간을 내서 언어를 따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활속에서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한 상황들이 정말 빠르게 체코어 능력을 많이 높여주었던 것 같다.

많은 손님들을 만나 상대를 해야 했고, 가게를 꾸려 나가기 위해서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해야 했고 체코어 직원과 소통하며 일을 지시해야 하니 이런 점들이 체코어 실력을 빠르게 올려주었다. 말 그대로 서바이벌 체코어였다. 복잡하고 어려운 체코어이지만 그냥 문법무시하고 이야기를 개떡같이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교정을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중구난방이었던 체코어 실력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교정이 되며 문법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내가 체코어가 가능하다면 나와 꾸비는 체코어로 대화를 할까?

답은 '아니다' 이다.

외국사람을 배우자로 둔 국제커플의 숙명은 평생 내 파트너의 언어를 공부하고 가르쳐주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자의 언어실력 향상을 위해서 끊임없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때로 사람들은 말한다

"현지인이자 원어민과 살고 있으니 확실히 체코어가 빨리 늘 수밖에 없겠어. "

과연 우리 꾸비는 나에게 좋은 체코어 선생님일까?

물론 그렇다. 꾸비는 나에게 인스턴트 인간 사전과 같은 존재다. 누군가가 솰롸솰라 이야기 하노라면 내가 직접 찾아볼 노력도 없이 쿠비에게 "뭐라고?" 라고 물으면 바로 대답해준다. 하지만 이 인간 체코어 챗지피티 성능이 그닥 좋지만은 않다. 아무래도 사람이기에 "아 몰라~"라는 답도 어지간히 튀어나온다. 하지만 꾸비 덕에 체코어를 많이 배웠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십 년 넘게 같이 살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체코어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아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한국어와 체코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영어를 기반으로 둔 체코어와 한국어를 짬뽕해서 사용하는 체콩글리쉬 CzeKonglish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그 체콩글리쉬를 아직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 체코어 셋다 같은 뜻이라고 해도 유난히 더 와닿는 단어가 있기 마련이고 예를 들어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를 써야 하는데 한국어 영어 체코어 중에 가장 와닿는 단어를 섞어 쓰게 되는 것이다.

너무 많은 체코사람들이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묻는다. 왜 체코어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와이프를 위해서 체코어로만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한국어는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배운 나의 모국어, 영어는 어릴 적부터 배운 첫 외국어, 그리고 체코어는 완전히 어른이 되어서 배운 언어, 즉 꾸비를 만나고 나서 배우게 된 언어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듯 언어도 나에겐 비슷하다. 한국어를 쓰는 내가 다르고 영어를 쓰는 내가 다르다. 그리고 체코어를 쓰는 나는 또 완전히 다르다.

같은 말이라도 언어마다 미묘한 뉘앙스가 있어서, 각 언어를 사용할 때 정서와 감성이 조금씩 달라지고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나의 페르소나도 약간씩 변화하는 듯하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과 경험입니다.)

조금은 복잡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 전에 영어로 된 페르소나로 만났고 그때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이어나가고 싶은 것이지 않을까? 

변명 같은 이야기지만 그래서 꾸비를 만났을 때 쓰던 불완전한 체콩글리쉬를 쓰는 그때의 자아를 바꾸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쿠비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체콩글리쉬를 쓰다가도 바로 다른 체코인과는 체코어로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 가끔 내 속에 다중이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황당할 때도 많다. 

때로는 생각한다 꾸비와 있으면 느끼는 편안함이 나를 퇴보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다큰 자식이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처럼 엄마앞에서 아양을 부리고 괜스리 땡깡을 부리듯 나도 꾸비와 함께 있으면 쿠비밖에 믿을 사람 없는 외국에 혼자 나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꾸비에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역시 스스로 반토막난 혀로 문법에도 맞지 않은 이상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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