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국민 스포츠는 무엇일까?
축구, 테니스, 스키, 스피드스케이트 체코인이면 모두 좋아하는 스포츠이다. 하지만 체코에서 가장 좋아하는 국민 스포츠는 뭐니 뭐니 해도 아이스하키이다.
아이스하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가 텅텅비고 아이스하키장을 지나는 버스는 마치 하키 응원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한 대절버스처럼 변한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 버스 안에 끼어있노라면 스스로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모두 얼굴에 칠을 하고 수건을 두르고 맥주를 들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길을 막거나 술에 취해 막무가내인 사람들도 많아져 어쩔 때는 하키가 있는 날은 좀 서둘러 집에 들어오기도 한다.
아이스하키 경기가 잡힌 날은 펍을 제외하고는 장사도 잘 안된다.
집에 일을 하려고 쿠비와 가는길 그리고 일 끝나고 오는 길... 너무 이상하리만큼 거리가 텅텅 비어있고
마치 전쟁이 났는데 우리만 아무 소식을 못들은 그런 기분이었다. 어쩜 찻길엔 차가 하나도 안 다니고 주말저녁은 길거리도, 오다가 들린 마트에도 어쩜 이렇게 사람 한 명도 없이 텅텅 비었는지 놀라웠다. 집에 거의 다 와 유난히 펍에만 사람이 꽉꽉 들어찬 거보고는 대충 예상이 되었다..."아.. 오늘 하키 하는 날인가 보구나."
집에 돌아와 티브이를 켰을 때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바로 아이스하키 결승전, 체코 vs 스위스 경기였다. 20여분 남짓 남아있는 경기에 아직 아무도 골을 넣지 못한 0:0 상황이었다. 아이스하키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나도 쿠비도 그래도 결승이라고 하니 티브이를 그저 틀어놓았다.
체코는 아이스하키 강국이다. 거의 항상 메달권이거나 우승후보이기도 했다. 체코는 IIHF(International Ice Hockey Federation)에서 13번의 금메달, 13번의 은메달, 그리고 22번의 동메달을 땄을 만큼 명성이 높다. 2011, 2012년 그리고 2022년에 동메달을 얻고 마지막 금메달인 2010년 이후의 14년 만의 금메달의 기회였다.
이 작은 나라에서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에 주변 유럽국과 붙어 이기고 미국 러시아 캐나다 같이 큰 나라와 붙어 이기니 얼마나 체코인들 마음에 불이 붙어있을지 안 봐도 뻔하다.
아이스하키 강국이지만 체코는 14년간 우승을 하지 못한 상황인데 오랜만에 결승게임을 하고 있으니 거리가 텅텅 비고도 남을 일이었다. 아마 사람들은 아레나에, 그리고 펍에, 그리고 광장에 다 몰려있는 모양이었다.
프라하와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경기를 홀에서 직접 관람한 수도 챔피언쉽 역사상 최다였다고 한다.
결승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체코가 결승전을 하고 있어서인건지 내겐 관심도 없던 하키도 꽤 재미가 있고 긴박감이 넘쳤다. 내가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서 그리 오래 살았다고 마치 우리 팀이라며 응원을 하는 나도 웃겼다.
그 조그만 퍽에 선수뿐만 아니라 그 많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에 꽂혔다.
어찌나 피터지는 경기인지 수비수 Jakub Krejčík 야꿉 끄레이췩 선수가 코가 부러져 경기에 임했고 선수들이 부딛혀 날아가기도 하고 얼마나 격렬하게 부딛혔는지 아레나가 부서져 경기를 중단하고 수리 후 다시 경기를 재개하기도 했다.
시간은 거의 흘러 겨우 10분 남은 상황, David Pastrňak 다비드 빠스뜨르냑이 골을 터뜨리고, 티브이에서도 그리고 조용하던 거리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이스하키가 스케이트를 신고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어찌나 회전이 빠른지 10분이 남았다고 해서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총공격을 해야 하는 스위스팀 입장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전술을 택했다.
골대 앞을 지키고 있는 골맨을 빼버리고 대신 몰아붙일 수 있는 선수를 넣어 총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골문이 비어있다니...!!! 아이스하키 경기를 처음으로 본 나로서는 너무 파격적이고 신선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단다.
이 남은 마지막 10분이 너무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었다. 골맨을 뺐다가 생각대로 잘 안되자 다시 골맨을 투입했다가 이것도 아닌 것 같은지 몇 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또 골맨을 빼고 총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우승을 결정짓는 골이 여기서 또 터져 나왔다. 골맨없이 총공격하기 위해 체코 골대 앞에 몰려있던 선수들 사이로 체코 선수가 쓰러지며 스위스 골대쪽으로 퍽을 밀어내고 또 미끄러 쓰러지던 다른 체코선수가 그 퍽을 좀 더 멀리 밀어내며 텅빈 스위스 골대앞에 가까워지는 퍽을 멀리서 달려오는 체코선수가 받아 골인. David Kampf의 두번째 골이었다. 정말 드라마같은 장면이었다.
체코 아이스하키 챔피언쉽 우승, 금메달 확정
그토록 조용하던 동네에 폭죽이 터지고 환호소리가 터져나왔다.
14년 만의 금메달 획득, 하키 강국이지만 14년 동안 금메달 없이 지내던 체코사람들의 갈증해소가 되는 날이었다.
마치 한국이 2002 월드컵 때 4강에 진출했을 때 같은 바이브, 그때의 그 느낌이라 반갑고 그때의 감성이 생각나 정겨운 마음도 들었다.
쿠비가 웃으며 말한다. "에휴, 내일은 회사에 출근 안 하는 사람 꽤 있겠네."
자정이 넘도록 인터뷰를 하고 체코 대통령인 Petr Pavel 뻬뜨르 빠벨이 선수들을 만나 축하하는 장면도 나왔다.
이 사람들은 진짜 미치도록 아이스하키에 진심이구나... 시간이 자정이 넘었는데 하키 금메달을 땄다고 대통령이 바로 경기장에 달려가는구나.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소환된 2002년 월드컵의 추억과 감성이 타국땅에서 느껴지는 날. 그리고 체코 이기라고 죽어라 응원하고 이겼다고 뿌듯해하는 나를 보며 황당하기도 하며 그만큼 이곳에 정착하고 일원으로서 살아가고 있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당분간 체코는 하키이야기로 대동단결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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