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체코 브르노에서 지내기가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체코살이 2~3년 즈음 한국에 돌아갔을 때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나도 모르게 아휴 집이다!라고 나오던 소리가 이젠 한국 본가에 갔다가 체코로 돌아와 브르노 중앙역에 도착하면 나온다. 언제부터 저런 소리를 내가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곳 브르노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내가 이곳을 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르노 Brno 는 체코에서 프라하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굳이 브르노를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과 같은 곳이랄까?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내려가야 있는 두 번째로 큰 부산이라는 도시처럼, 브르노도 프라하에서 동남쪽으로 오래 내려가야 있는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것이다.
브르노는 프라하와의 거리보다 차라리 비엔나와 더 가까이 위치해 있어 체코에 들리는 한국 여행객들은 브르노를 거의 모르거나 이곳에 들른다면 비엔나나 다른 도시로 넘어가기 전에 그냥 거쳐가는 도시정도로 머물곤 한다.
그래서 브르노는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사실상 크게 알려진 바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다.
프라하와 오스트라바에 비하면 현저하게 브르노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사람들도 적어서 사실 현지인들과 더 잘 어울려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에는 많이 알려지고는 있지만 브르노는 시내에 잠시만 나가도 부딪히게 되는 여행객들도 현저히 적다.
프라하 같은 관광도시가 아니라서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많은 대학들이 브르노에 있어 공부하기 위해 상경한 젊은 체코사람들에 의해 젊은 기운이 뿜뿜 나는 그런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는 파리에 콧대 높은 빠리지앵이 있듯, 체코도 프라하에는 프라하 사는 깍쟁이 쁘라쟉들이 있고 재미있게도 이들도 콧대높고 약간은 거만한 이미지가 있다. 수도인 프라하에 사는 쁘라쟉들은 자부심 가득, 또 수도에 살지 않는 부러움 가득한 지방사람들은 이런 쁘라쟉들을 놀리기도 한다.
쁘라쟉 (Pražák) 프라하사람을 뜻한다.
브르냑 (Brňák) 브르노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언젠가 프라하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게 되는 날이면 마치 시골쥐가 도시에 가서 콧대 높고 삭막하며 정 없는 쁘라쟉들에게 한참 시달리다가 작지만 평온한 브르노에 돌아오면 한숨 돌리게 되는 그런 느낌도 든다.
프라하 사는 쁘라쟉들이 모두 나쁘다는 뜻도 브르노에 사는 모든 브르냑들이 좋기만 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미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게 10년이 넘어가는 때 나의 브르노에 대한 애정이 프라하보다 커져버렸고 그로인한 편애는 어쩔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기본적인 생활 기반이 이곳에 있고, 쿠비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며 살아온 곳, 이곳에서 사업도 하고 많은 친구들이 있으며 이웃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오늘은 작지만 젊은 기운이 넘치는 브르노라는 곳을 몇 군데 소개하고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자랑하고자 한다.
브르노 전체의 전망을 굽어볼 수 있는 슈필베르크성은 브르노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브르노의 중심부에 위치한 슈필베르크는 원래는 합스부르크 통치시대의 요새이자 가장 무서운 감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브르노의 전망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갤러리로도, 박물관으로도 사용되며 가끔은 야외극장이나 공연도 하여 브르노 시민들의 문화 예술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공원에서는 유유히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18세기의 바로크식 약국도 구경할 수 있다
1645년 5월 스웨덴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스웨덴군대를 막은 곳이 바로 이 요새인 슈필베르크 성이었다. 서쪽으로부터 스웨덴 군대에 의해 슈필베르크가 포격에 휩싸였을 때 급하게 목수와 석공들에 의해 만든 장벽이 슈필베르크를 스웨덴 군대로부터 브르노를 지킬 수 있었다.
체코의 동전 10크라운을 보면 Katedrála sv. Petra a Pavla라고도 알려진, 뻬뜨로프 Petrov가 있다. 브르노 하면 떠오르는 Petrov, 나뿐만 아니라 체코사람들도 브르노 하면 Petrov인가 보다.
뻬뜨로브는 12세기에 기초가 세어진 바로크양식과 신고딕으로 재건된 브르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아직도 교구를 관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콘서트 및 음악 활동도 하고 있다.
이 탑의 종은 오전 11시에 울리는데, 이는 스웨덴 군대가 브르노를 포위했을 때 스웨덴 Torstenson 장군이 정오 이전에 도시를 점령하지 않으면 공격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하여 Raduit de Souches 장군이 스웨덴 군에 속임수를 쓰기 위해 한 시간 일찍 11시에 종을 쳤다고 한다.
이른 아침 아침햇살이 비치는 거대한 황금색의 빼뜨로브는 너무 아름답다.
1228년부터의 역사를 가진 체코에서 가장 귀중한 후기 고딕양식 기념물로 스웨덴 군대가 점령했을 때 브르노를 막아낸 Raduit de Souches 장군이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교회 아래에는 꼬스뜨니쩨 Kostnice, 납골당이 있다. 꼬스뜨니쩨에 가면 사람들의 유골을 빽빽하게 늘어져 장식되어 있다. 이곳의 발견된 유해의 수로만 따지면 파리의 카타콤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예전의 이곳은 묘지가 있던 곳이었으나 자리가 없어 이렇게 납골당으로 만들어졌다.
신성한 곳이지만 솔직히 무섭고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곳에 있는 유해는 최대 5만구가 넘는다고 한다.
13세기에 만들어져 1935년까지 시청으로 사용된 건물로 현재에는 문화, 인포센터가 있다.
구시청으로 들어가는 포털은 1510년부터 1511년까지 석공인 안또닌 필그람(Antonín Pilgram)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장식은 아주 정교하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브르노의 상징인 브르노 바퀴와 악어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오면 시청 뜰과 탑이 보인다.
이 뜰에서는 공연을 하거나 연극이나 영화 상영 등 브르노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시청의 탑은 63미터로 거기서 브르노 시내의 뷰를 감상할 수도 있다.
체스카 Česká 트램 정류장이 있는 Joštova 거리에서 왼편으로 라쉬노바 Rašínova거리를 따라 걸어 들어오면 브르노 시내의 중심부인 자유광장인 Náměstí Svobody 나믄녜스띄 스보보디가 나온다. 뻥 뚫린 광장과 오래된 색색의 건물 사이로 브르노를 상징하는 빨간 트램이 마구 지나다니고 유동인구가 많아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이 자유광장에는 검은 돔모양의 천문시계도 있다.
자유광장을 지나 조금 더 걷다가 보면 구시청을 지나 배추시장도 만날 수 있다.
배추시장인 Zelní trh 젤늬 뜨르흐에 배추만 팔 거 같지만 사실 그냥 과일도 팔고 꽃과 야채 등을 파는 노점들이 모인 시장이다. 아침부터 오후일찍까지 운영을 하며 항상 싱싱하고 다채로운 로컬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곳을 아침에 나와 둘러보며 신선한 과일을 사 먹는 쏠쏠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브르노는 사실 작은 도시이니 만큼 조금 서두른다면 하루 만에 모두 관광이 가능하다. 물론 자세히 본다면 하루가 부족하겠지만 앞에 소개했던 곳들이 가까운 곳에 모두 모여있기 때문에 브르노 중심가 시작부터 끝까지 천천히 구경하면 사실 충분하다.
브르노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 Lužanky 루쟌끼 공원을 지나 Černá pole 체르나뽈레 구 쪽으로 오다 보면 대학 다닐 때 건축디자인 시간에 교재로만 자주자주 봤었던 그 전설의 현대 건축의 걸작인 빌라 투겐하트가 바로 브르노에 있다.
2001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빌라 투겐하트는 독일 건축가 Ludwig Mies van der Rohe와 Lilly Reich에 의해 설계된 유럽의 현대건축 원형이다. 1928년부터 1930년까지 Fritz와 Greta Tugendhat를 위해 만들어진 이 빌라는 3층짜리로 강화 콘크리트와 혁신적인 철제 프레임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지금에 와서도 이 투겐하트는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현대적인데 이 빌라가 지어진 게 1930년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혁신적인 현대건축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브르노에 방문하는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분명 이 빌라 투겐하트를 봐야 하지 않을까?
포스트에서 앞에 하루 만에 브르노를 다 둘러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은 포스트를 계속해서 지워내고 수정하며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랫동안 여기서 살아오며 애정도 커진 만큼 소개하고 싶은 곳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포스트가 너무너무 길어져서 사실 굉장히 많은 양을 지워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수리하고 있는 집이 다 완성되면 브르노를 떠나 새집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사가게 되면 매일 익숙해져서 무뎌져 몰랐던 브르노의 매력이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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