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는 우리 꾸비의 밑밑 동생인 빠땨(빠뜨리쩨)의 결혼식이었다. 그녀는 두 살 많은 본인의 친구였던 요세프와 연인이 되어 약 2년 정도의 연애 끝에 지난달 6월 8일에 지인들만 불러 결혼식을 치렀다.
드보르니꼬바라는 이름에서 요제프의 아내가 되는 순간부터 시미츄꼬바라는 남편의 성에서 딴 새 성을 얻게 되었다.
나와 쿠비는 신부의 오빠로서, 오빠의 와이프로서 당연히 결혼식에 초대되었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본인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본인의 아버지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은 어린 시누를 보면서 신부의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를 초대했다는 생각은 당연하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나만의 생각이었구나 싶었다.
물론 개인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지만 십 년 넘게 이 집안을 지켜봐 왔던 나로서는 이점이 지금까지도 굉장히 놀라웠고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갈등을 빚는다고 한들 겨우 인생에 한번 있는 결혼식에 가짜아빠도 아닌 본인을 이 세상에 만들어준 아빠를 초대하지 않는 그녀를 보며 인간적인 실망감이 들었고 이 놀라움은 지금도 이따금 불쑥불쑥 머릿속에 들곤 한다. 이 과정에서 아무런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지 않는 그녀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감정이었다.
아무리 개인적인 성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럽이라고 한들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인가?
체코사람들은 희한하네~라고 생각될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문화적인 차이가 아니라는 점, 각 개인과 가정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평소에도 천방지축 고집세고 제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의 성격인 것은 진즉에 알았지만 자신의 기분에 따른 행동이 너무 철없지 않은가 싶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겠다는 결혼식, 게다가 엄마까지 가만히 계시는 것에 나와 꾸비가 뭐라고 왈가왈부하겠는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나의 기분이 행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마 이날은 앞으로 그녀에게는 인생의 한 번뿐인 결혼식이자 부친과 연을 끊은 날일 것이다.
덕분에 만국공통 아버지와 함께 등장하는 신부입장에 혼자서 당당하게 등장하는 독특한 결혼식장면이 연출되었으나 모두 그녀의 선택이니 이 또한 그녀의 몫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앉아계시는 신랑 측 자리에 비해 신부 측 자리에는 멀쩡하게 살아계시는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있는 모습, 몇 년 후 그녀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이 장면은 이불킥 모먼트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본인이 초대한 모든 친구들과 동료뿐만 아니라 신랑 측 식구들에게도 나와 나의 아버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그래서 결국엔 살아계시는 아버지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은 것을 공표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빠름의 민족인 우리나와는 다르게 하루 꼬박 걸리는 결혼식이어서 대부분 미리 정말 친한 사람들 위주로 알리고, 초대받은 사람들도 하루종일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무슨 결혼식을 하루종일 하느냐고 놀랄 수도 있지만 초고속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사정일 뿐, 아마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꼬박 하루가 걸리는 이벤트라 신랑신부는 오래된 물레방앗간을 통째로 빌렸다.
6월이라 이미 꽃은 만발해 있었고, 드넓은 들판과 작은 천이 시원하게 흐르는 아주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곳이었다. 물레방앗간 옆에 딸린 오래되고 거대한 헛간을 개조하여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모두가 앉아 피로연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는 시간은 오후 1시였지만 이미 그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고, 아침부터 간식과 원하는 음료를 먹으며 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하고 있었다. 신부와 신랑의 하객들은 총 많아봤자 50명 정도여서 이 물레방앗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계속해서 마주치는 사람들이라 결국엔 모두가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식이었다.
헛간 옆에는 바가 있었고 누구든 가서 원하는 음료를 주문하면 바로 만들어주는 바텐더도 있었고 더운 야외결혼식에 모두가 시원한 무언가 한잔씩 손에 쥐고 있었다.
몇 년 전에 한국집에 갔다가 한복을 사 왔던 것을 빠땨에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 네가 결혼하면 그거 입고 참석하겠다고 재미 삼아했던 이야기를 친구들과 여기저기 했던 모양이다.
내가 한복을 좋아해서 체코까지 가지고 왔지만 입을 기회가 없어서 이렇게 결혼식 같은 행사가 있으면 입겠다고 생각을 해왔는데 결혼식이 6월에 이미 초여름의 더위 때문에 긴팔인 한복을 입을 수가 없어서 되는대로 HnM에서 저렴이 500 코룬 주고 시원한 평범한 원피스를 입고 참석하였다. 길게 떨어지는 드레스였는데 내가 한복을 입고 올 수도 있다고 들었던 빠땨의 친구들이 인사를 하러 와서 나에게 웃으며 말한다. "와우~ 유 해브 쏘 나이스 기모노!"
(오마이갓.. 이마짚.. )
기본값으로 축의금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테이블 한쪽에 신랑신부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두는 공간이 따로 있었고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잔뜩 쌓인 선물들 같았다. 물론 축의금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서 무엇을 선물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축의금 상자도 따로 구비되어 있어서 쿠비와 나는 축의금 상자에 밀어 넣고 왔다.
신랑 신부가 각자 들판 결혼식장으로 입장을 하고 여러 가지 음악이 오케스트라형식으로 흘러나왔는데 확실히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끈 게 맞는지 이 평범하디 평범한 체코인의 결혼식에서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흘러나왔고 하객 모두들도 아는지 따라 부르거나 흥얼거리는 모습이 새삼 놀라운 순간이었다. 신랑의 막냇동생이 케이팝 찐 팬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다이너마이트가 흘러나오자 놀라는 모습으로 환호를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물레방앗간으로부터 100미터 정도 모든 하객들이 걸어 높은 들판에 서서 신랑과 신부를 기다리고, 그곳에는 이미 주례를 볼 시청 직원 두 명이 나와있었다.
결혼식은 시청직원들이 나와서 주례를 보며 서로가 부부가 되겠다고 선언을 하는 순간 바로 서류에 신랑 신부 서로가 사인을 한다. 가장 로맨틱한 행정업무가 아닐까 싶다.
6월의 초였지만, 들판 위, 야외에서의 결혼식이었기에 햇살이 뜨거웠다.
결혼식이 끝나고 모두가 피로연으로 향하는 것은 만국공통.
갈비탕이다 국수다 우리처럼 결혼식에 따로 정해진 음식은 없다. 그저 신랑과 신부가 고른 음식들로 뷔페가 준비되어 있었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모여서 함께 식사를 시작하는데 신랑신부가 피로연에 모두가 잘 보이는 가장 큰 중앙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고, 식사 전 모두가 샴페인을 들고 신랑신부를 보며 그들의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인사를 듣고 다 함께 건배를 하고 식사가 시작된다.
피로연은 정해진 시간이 없이 뷔페가 바깥에 준비되어 있어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또 뭔가 먹고 싶어 지면 아무 때나 갖다 먹을 수 있었고 덕분에 하루종일 배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신랑신부가 식사 중 재미로 해보라며 십자낱말퀴즈를 한 장씩 나누어 준다. 질문의 내용은 신랑의 직업은? 신랑이 마지막으로 갔다 온 출장지는? 신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이러한 것들이었고 모두 풀어 각 순서대로 자음을 주르르 나열해 놓으니,
Děkujeme, že jste tady s nami. (이곳에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디제이가 와서 흥을 돋울만한 음악을 틀어놓고 신청곡도 틀어주고 모두가 신부 측 친구던 신랑 측 친구던 상관없이 누구나 튀어나와 춤을 추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빠땨가 가장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나와 같은 내향적인 사람들은 야외에 앉아 끊임없이 홀짝홀짝 무언가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사람들의 폭발하는 흥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광란의 댄스파티는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
유명한 들어봄직한 신나는 음악이 둠칫둠칫 밤새 흘러나오고 그 와중에 역시 월드스타 bts의 butter도 흘러나오고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빨리 스테이지에 올라와서 bts의 음악에 춤을 추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황당했는지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나오는 게 신나면서도 괜히 나한테 춤추라고 시킬까 봐 음악 안 듣고 있는 척 괜히 음식 가지러 가는 척을 했던 것 같다.
밤은 깊어가고 진짜로 밤을 새워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슬슬 피곤에 지친 사람들은 물레방앗간 뒤편에 미리 만들어놓은 몽골식 텐트에 들어와 잠을 잤다.
뜨거웠던 6월의 초여름을 증명하듯 자정이 되어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급하게 야외에 펼쳐져있던 의자나 장식들을 급하게 안으로 들여다 놓기에 바빴고 디제이도 급하게 디제잉 장비를 안으로 들여놓았지만 음악을 멈추지는 않았다.
자정에 갑자기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텐트에 들어온 꾸비와 나도 여전히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빗방울이 텐트에 부서지는 소리를 밤새 들으며 잠이 들었다.
아침 아홉 시 즈음 모두가 다시 헛간에 앉아 아침식사를 마치고 하나둘씩 하객들이 집으로 떠나고 꾸비와 나는 이곳에 남아 장식들을 치우고 물레방앗간을 원상 복구하는 것을 도왔더랬다.
다 물레방앗간 측이 제공한 것인지 알았던 것들도 신랑신부가 진즉에 미리 와서 여기저기 세심하고 꼼꼼하게 장식해 놓았던 것이었다. 언젠가 플로리스트 일을 해보고 싶다던 빠땨가 이곳에 있던 모든 꽃장식을 직접 만들었다고 하고 생각보다 실력이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한 결혼이라는 점, 결혼식에 와준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충분히 하고 대화도 나누고 춤도 추며 하루를 꼬박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럽의 결혼식 문화가 확실히 좋아 보였다.
그리고 단순히 여러 가지의 옵션을 선택을 하는 우리나라의 웨딩문화와는 달리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 계획을 하고 작고 세세한 장식까지도 신랑신부의 손으로 완성되는 결혼식이 얼마나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금전적으로도 많은 세이브가 될 것이고 남들과는 전혀 다른 나만의 웨딩을 직접 내손으로 준비한다는 점도 색달라보였다. 옛날에 슈퍼스타 이효리가 제주도에서 스몰웨딩을 해서 호화스러운 것을 지향하던 우리나라의 웨딩문화에 다소 변화를 주었다고 들었다. 유럽문화를 따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혼식에 와준 사람들에게 좀 더 집중하고 다음 차례를 위해 서두르는 그런 결혼식보다는 일에 바쁘고 부지런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맞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여유 있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웨딩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천방지축의 어린 시누가 사람들 초대하여 대접한다고 열심히 또 나름 멋지게 준비해 놓은 결혼식이 내가 알고 있던 빠땨에 대해서 완전 막무가내 철부지 어린애는 아니었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고 얼마나 준비한다고 고생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약간 그녀의 형편보다 무리한 점도 있어 보였지만 단순 과시보다는 오는 손님에 대한 성의라는 느낌도 받았다.
결혼식을 아예 치르지 않은 나와 꾸비로선 다른 이들의 결혼식이 신기하고 그저 재미있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부러워서 갑자기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싶거나 결혼식을 올려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다.
나도 꾸비도 갑자기 내가 사람들 앞에서 이목을 끌고 주인공이 되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느껴지고 뭔가 오그라드는 것이 싫었고 이 지극히 형식적인 것을 왜 굳이 돈까지 써가면서 해야 하는지 결혼식의 당위성을 딱히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번 결혼식에 초대받아서 문득 근사한 장소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내가 성인이 되어 앞으로 나와 함께 할 반려자와 감사의 대접을 하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아빠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는 철딱서니 빠땨나 내가 결혼식이 싫다고 부모님들이 그토록 원하던 결혼식을 끝끝내 올리지 않는 나나 특별히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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