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를 하고 여러 작업을 하려면 물건을 차로 실어와 집까지 들여와야 하고 여러 가지 자재나 툴들을 마당에 널브러뜨려 놓고 편하게 작업을 해야 하기에 가장 먼저 집에서 해야 할 일은 정원을 치우는 일이었다.
여러 해동안 방치되어있던 이곳의 정원은 정말이지 정글 그 자체였다. 알 수 없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타잔이 타고 다닐 수도 있을만한 넝쿨들이 집벽이며 마당이며 여기저기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 정신없는 정원을 보고있자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한숨만 나왔다.
항상 도시에만 거주했고 편리하게만 살았던 나에게는 정원이라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 설렘이었다.
우리 집은 집에 들어오는 입구부터 길게 뒷마당까지 라일락이 일렬로 피어 이웃들로부터 집을 가려주는 가림막 역할을 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바람막이역할을 하며 집안에서 바라보면 마치 보라색 구름병풍처럼 보인다.
바람이라도 불 때면 라일락을 타고 온 바람이 마치 섬유유연제를 진하게 풀어놓은듯했다.
라일락은 이 집의 봄에 대한 첫인상이며 내가 이 정원에서 찾은 첫 보물이었다.
라일락이 향기면 향기, 보라색 꽃이 보기에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자란 라일락 가지들이 정원의 3분의 1을 점령하고 있었고 이 라일락 가지들을 잡초처럼 뽑는다고 깔끔하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땅에 있던 뿌리에서 또 싹이 나고 아무리 가장 밑에서 가위로 잘라버려도 땅밑에 길게 가로로 뻗어 퍼져나가는 뿌리 때문에 잘 뽑혀 나오지도 않았고 또 금방 순이 자라나기 일쑤였다.
내가 경험도 없거니와 대충 잘라내면 또 금새 자라 버려서... 나는 결국 일일이 한 가지 한 가지뿌리까지 잡아 뽑는 방법을 선택했다.
덕분에 몇주간 손아귀부터 손가락, 허벅지 등 어깨.. 온 데가 안 아픈 데가 없어서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
생각보다 일이 너무 힘들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 겨우 처음 하는일에 이렇게 일이 힘들다니... 걱정이 앞서고 살짝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고되지만 날이 점차 더 따뜻해지면서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하나 둘 숨어있던 보물들이 얼굴을 내민다.
한 가지 한 가지 라일락을 정리할수록 라일락 가지 속에 숨어있던 작은 미라벨(mirabelle plum) 나무도 보이고 보라색 자두나무도 나타난다.
무심하게 자라나는 라즈베리, 그리고 이웃아저씨가 건강에 좋으니 베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엘더베리나무까지
미라벨: 서양 노란색 자두(mirabelle plum), 일반자두보다 크기가 작으며 단맛이 강하다.
엘더베리: 서양접골목 (elderberry), 꽃과 열매 모두 오랫동안 요리로 쓰였고 시럽이나 와인에 사용된다. 여름철 체코의 카페에 가면 맛과 향이 일품인 엘더베리 레몬에이드도 종종 볼 수 있다.
잡초인지 무엇인지 몰랐던 곳에서 빨간 튤립이, 아기자기한 무스카리꽃이 그리고 수선화 7송이가 피어난다.
현관앞에는 왜 여기서 자라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딸기가 꽃을 피워 아마 여름이 되면 딸기파티를 벌일 수 있을 것만 같이 양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제대로 된 딸기를 맛보려면 아무래도 딸기 재배하는 방법을 배워야할 것 같다.
집 공사도 시작되지 않은 마당에 정원이 주는 즐거움과 설렘에 씨앗종묘상 웹페이지에서 사지도 않으면서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씨앗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놓는 것이 요즘의 내 취미가 되었다. 고작 천 원, 이천 원짜리 마음에 드는 씨앗을 하나둘씩 담아놓고 나니, 총구매액이 자그마치 20만 원이다.
집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잘 가꾼 정원에 부추도 심고 깻잎도 심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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