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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식당열기

체코생활

by 아호이호이 2024. 4. 2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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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용감하다.

 

내가 체코에 온 해는 2014년, 그리고 내가 체코에서 식당을 개업한 때는 2016년, 내가 29살 때였다.  체코로 정착한 지 겨우 2년여즘 된 무모한 맨땅에 헤딩이었다.

지금의 프라하는 한식당의 갯수도 많을뿐더러 때문에 한국식품점도 꽤 많다. 내가 기억하는 치킨집만 3곳, 떡집에 빙수집이며 한국스타일의 카페, 핫도그집 등 없는 한국음식이 없다.

나 때는(Latte) 말이지, 그 당시에도 한류가 있긴 있었지만 수요가 지금만하지 않았다. BTS며 블랙핑크며 기생충이며 한국콘텐츠가 대 히트를 치고, 티브이에서는 윤식당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며 한국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 같다.

그 당시 프라하는 지금의 프라하만큼 한식당이 많지 않았고, 심지어 제 2 도시인 브르노에서는 내가 유일무이한 첫 번째 한식당이었다.

내 가게를 열기위해 쿠비와 함께 모두 직접 수리를 하고, 타일도 직접 바르고, 벽을 칠하고  메뉴판을 만들고 하나부터 열까지 작업하여 2016년 2월에 가게를 계약하고 비로소 2016년 7월 11일에 드디어 오픈할 수 있었다.

경험과 돈이 빵빵하게 받쳐줬더라면 더 크고 더 이쁘고 화려한 그럴싸한 가게다운 가게를 열수 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처음시작하는 돈도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29살 초짜로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작지만 깔끔했던 우리가게

 

 

우리가게 메뉴는 김밥(5가지)과 라면, 비빔밥과 불고기덮밥 그리고 그날그날 다르게 제공되는 그날의 수프 이 다섯 가지가 전부였다.(내 전공이 외식업이나 조리 쪽이 아니니 어설프게 이것저것 하느니 깔끔하게 몇 가지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메뉴 수가 적고 단골손님은 많았기에 나의 매너리즘을 타파하고 여러 가지 한국음식을 소개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 달에 한번 스페셜메뉴하는 날을 만들어 기존 메뉴 외의 새로운 음식을 제공했더랬다.

 

 

연어가 든 연어김밥과 갈비가 든 갈비김밥, 우리가게의 평상시 메뉴이다.

 

 

가게는 프라하도 아닌 한국 관광객은 잘 찾지도 않는 브르노라는 곳에, 심지어 센터도 아닌, 이런 곳에 식당이 있을까 할만한 골목에 숨어있었고 작은 테이블 겨우 8개가 전부인 작은 규모였다. 나는 주로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홀에서는 직원이 서빙을하며 계산을 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주방이었다. 나하나 들어가면 꽉차는 말도 안 되는 사이즈의 주방이었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도 선풍기도 놓지 못하고 설거지라도 도와줄 주방 아르바이트라도 구하지 못한 채 주방에는 나 혼자서 설거지를 해가면서 음식을 완성했어야 했다. 공간이 지나치게 한정된 곳이다 보니 화구도 겨우 인덕션 2 화구, 점심시간에 모든 테이블이 차면 15명이 앉을 수 있는데, 포장주문까지 하면.. 바쁜 시간에 화구 꼴랑 2개로 어떻게 20개 정도 되는 주문을 처리해 왔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가게가 작다보니 방문 때마다 자리가 없거나 오래 기다려야 해서인지 가게는 점차적으로 예약하고 오는 손님들이 많아졌고 오픈런해 주시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이것이 이 힘든 식당영업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다음날 팔 만두를 직접 피를 만들고, 하나하나 싸기도 했다.

 

 

 

내 전공은 산업디자인이다. 산업디자인과 식당은 아무 상관이 없지만 부모님이 한국에서 평생 요식업에 몸담아 오셨기에 이쪽일이 낯설어 보이지 않았고, 저절로 맛있는 음식 해 먹는 걸 좋아하게 되었기에 결정은 아주 쉬웠다.

그렇지만 평생 이 고된일을 부모님은 해오신 터라 얼마나 이 일이 힘든지 아시기에 내가 이 김밥집을 열겠다고 하셨을 때 부모님은 별로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기회가 되면 종종 일이 힘드니 그만하라고 회유하시곤 했다.

4년제 대학나와서 느닷없이 겨우 한다는 게 김밥집이라니... 나의 꼴통짓에 얼마나 황당하셨을지 이해가 된다. 어김없이 이 일을 그만하라고 하실 때면 나는 미대 나와서 김밥 말면 나름 미적으로 뭔가 더 잘 말지 않겠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영업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사실 나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너무 뜬금없고 철딱서니 없이 가게를 시작했기에 애들처럼 얼마 못하고 가게를 닫을 수 없어 그냥 열심히 한 것도 어느 정도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다보니 단골손님도 엄청 많아졌다. 방문하는 손님의 70퍼센트 정도가 단골손님이었고, 단골손님이 늘수록 손님께 이름을 물을 수는 없고 머릿속으로는 단골손님들을 기억하기 위해 단골손님들의 별명을 붙이고 있었다. 삼성에서 일을 한다는 "삼성맨", 시간 땡 하면 항상 정시에 오시는 "알람아저씨" 연어김밥만 드시는 "연어아줌마", 정말 특이한 금색 점퍼를 자주 입고 다니셨던 "금잠바 아줌마" 등.. 물론 그분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단골손님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성격이 어떤지 다 파악하고 나면 단골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손님이 들어오시는 순간부터 주문도 받지 않고 조리부터 시작하는 일도 많았다.

 

코시국때 스페셜 메뉴로 팔았던 도시락메뉴, 이달은 두부조림, 김치, 소떡소떡, 잣소스새우연근냉채, 닭조림으로 구성, 스페셜메뉴를 하는 날이면 메뉴가 없어서 못판다.

 

우리 가게 바로 앞 맞은편은 식당들을 불시에 방문하여 단속하는 위생반 건물이었다. 그리고 재미나게도 단골손님 중 꽤 많은 수의 위생 단속반 손님들이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실이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거구나 이분들을 통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식당의 위생을 관리 감독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 와서 자주 드나들며 맘 놓고 식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그래도 내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사실이 아닌가?

 

영업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쓸데없는 완벽주의자적 성향이었다. 그러다보니 영업시간이 끝나도 내일 영업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더 완벽하게 준비하느라 정말이지 하루종일 서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종일 내 몸을 지탱하는 내 다리는 퉁퉁 붓기 시작하였고, 제때 끼니를 챙기지 못해 식사를 몰아서 폭식을 하기 일쑤였으며 나의 포부가 커져갈수록 내 몸도 망가져갔다. 몸뿐만이 아니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공황도 종종 찾아오기도 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데 사람들이 내가 통제가 안될 정도로 너무 많거나 너무 힘이 들면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앞이 안 보이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증상이 찾아오고 손님이 많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분 10분씩 주저 않아 숨을 고르는 일이 점차 잦아졌다. 너무 손님이 많아 가게가 더워서 땀이 나는 거겠거니, 너무 더워서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졌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이것이 공황의 증상임을 알고 나서는 애초에 10년 영업을 채우겠다던 다짐도 고쳐먹게 되었다.

 

2016년 7월초에 오픈하여 2023년 6월을 모두 채운 약 7년 정도 영업하였지만 겨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마쳐야 했다. 앞으로도 블로그에서 식당운영을 어떻게 했는지 어떤 일들이 있어났었는지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가게를 문닫고 나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손님들도 아쉽겠지만 나도 무척이나 아쉽다. 너무나도 모르는 초짜가 제대로 하긴 한 건가 하는 의문도 있고 미련도 생겼다.

나는 가게를 하며 그동안 큰돈을 벌고 성공하였을까? 항상 손님들로 북적북적하고 바쁘게 뛰어다니던 나를 보면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오해하는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니다. 사업의 수익을 고려했을 때 상세하게 그 이유를 조목조목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규모도 더 커야 했고 시기적절하게 사람도 잘 써야 했고 더 많은 공부와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했다.

너무나도 많은 아쉬움이 남긴하지만 돌이켜 따져보면 일말의 후회는 하지 않고, 이 또한 가게를 꾸려 직접 운영해 본 일 자체가 너무나도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된 것 같다. 이 일을 하면서 무엇보다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크게 배웠다. 직원을 다루고 오가는 손님들을 상대하고 만족시키며 각종 경쟁자들을 상대하는 방법 등이다.

 

시작할 때는 나를 제외한 한식당이 전무했던 이 동네에는 내가 가게를 접을 때는 내가 기억하는 곳만 대여섯 군데 정도로 많이 늘었고 브르노뿐만이 아니라 체코의 다른 지방도시들에서도 한식당이 꽤 보이며 이제는 한식이 어색하거나 신기한 음식이 더 이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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