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게 메뉴는 김밥과 라면, 그날그날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오늘의 수프 그리고 불고기덮밥과 비빔밥이었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베스트셀러는 압도적으로 단연코 비빔밥이었다.
김밥도 맛있지만, 한 줄 먹어서 애매하게 배가 덜 부른 양의 김밥보다는 더 많은 종류의 야채들을 듬뿍 넣고 배를 든든하게 할 밥과 고기까지 들어간 음식이 맛도 있고, 영양학적으로도 훌륭하고 배도 불러 가성비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각종 재료에 색감까지 알록달록하여 화려하고 있어 보이는 음식 이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가게에 거의 매일 오는 단골손님들은 찐한국인들처럼 고추장 팍팍 넣고 팍팍 비벼서 숟가락으로 잘도 드신다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이미 각 메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손님이 제대로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저 새로운 희한한 식당이 생겨 궁금함에 방문한 손님들은 처음으로 보는 음식과 쇠젓가락 앞에서 갸우뚱해하곤 한다. 아무리 처음 오는 손님이라도 한국음식에 대한 첫 경험이 좋게 남아야하기에 어떻게 먹어야 맛이 있는지 항상 설명을 드렸다.
처음 먹어본 한국의 음식이 맛이없다고 느껴진다면 원래 한국음식은 이렇게 맛이 없구나 느낄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손님이 아니면 누구든 예외가 없었다.
'밑에 밥이 있으니 밥과 함께 고추장을 넣고 완전히 섞어야하고 꼭 숟가락으로 드셔라.' 이것이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아시아음식은 꼭 젓가락으로 먹어야만 한다는 이상한 유럽인들의 고정관념 때문에 10명 중 7명은 한국인들도 하기 힘든 젓가락질로 완비빔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비빔밥에 관한 재미있는 경험 몇가지**
-일본만화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비빔밥 그릇을 손에 올리고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먹는 사람들...
-비빔밥과 고추장이 같이 서빙되었는데 비빔밥은 싹싹 긁어먹고 고추장이 새것 그대로(젓가락으로 한 번도 찍어먹어 본 흔적도 없이) 돌아왔을 때, 그리고는 참 맛있게 드셨다고 칭찬을 들었을 때.
-반대로 고추장을 많이 달라고 주문하셔서 정말 많이 드렸는데 한 종지 더 달라고 하셔서 그 모든 고추장을 넣고 쌔빨갛게비벼드시는 것을 보았을 때
-비빔밥을 숟가락으로 꼼꼼히 잘 비벼놓고 숟가락은 내려놓고 젓가락으로 밥을 한 톨씩 먹을 때
-비빔밥을 골고루 잘 비벼 드시라고 설명을 분명 드렸는데도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당근만 집어 먹고 무나물만 집어먹고 나중에 맨밥만 따로 먹을때
-비빔밥을 주문하면서 고추장 빼고 버섯 빼고 당근 빼고 무나물 빼고 달라고 하실 때 속으로 쌀밥에 프라이 얹어먹는 거랑 뭐가 다르지?라고 생각했던 적
모두 한국에 있는 음식점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비빔밥의 진성성을 훼손한 이 모든 사람들은 비빔밥이 진심으로 좋아서 본인의 이름을 유비빔으로 개명하였다는 유비빔 씨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 ㅎㅎㅎ
(혹시 유비빔씨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검색창에 이분에 대해서 찾아보시기를 바란다. 실존인물이고, 한가지에 이정도의 열정과 광기를 쏟아붓는 것이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가게에서 가장 많이 준비해 놓았던 음식이기도 해서 일끝 나면 항상 쿠비와 내가 함께 먹을 저녁으로 집으로 싸갔던 음식이 비빔밥이었다. 그때는 다른 음식을 해서 먹는 것이 귀찮아서 가게에서 했던 비빔밥을 싸가서 먹는것이 전부였는데 가게를 접고 난 후의 지금은 이상하게 그 비빔밥이 먹고 싶다.
희한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비빔밥 세계를 찾던 여러 손님들도 그립고 보고 싶다.
지금은 한국식당에서 콩조림과 빵, 계란프라이와 소시지로 된 영국식 브런치로 탈바꿈한 곳에서 이제는 비빔밥이 아닌 영국식 브런치를 탐닉하고 있겠지?
가게를 관두고 이미 반년이 지나 그때의 비빔밥이 또 먹고 싶어 집에서 나와 꾸비가 둘이 먹을 비빔밥을 만든다.
냉장고에 원래 있던 나물을 털어 만드는 비빔밥이 아닌 재료 하나하나 바로 볶아낸 나물을 올리고
현미밥을 뜨겁게 갓 지어내어,
평소답지 않게 계란프라이 대신에 백지단 황지단 따로따로 부쳐 썰어놓고 고명까지 따로 만들어 모두 정성스럽게 올려낸다.
허기인지 추억인지 모르는 오늘 저녁은 그렇게 꿀 없이 꿀맛 나는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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