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 부지런히 최대한 활동적으로 많은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이 나의 계획이었는데
겨우 5월 초인 체코는 벌써 왜 이렇게 더운 걸까?
온난화로 인한 온도 상승도 있고 올해는 엘니뇨 때문인지 기분 탓인 건지 봄인데도 불구하고 훈훈하지가 않고 따뜻을 넘어 벌써 이미 더워진 기분이다. 봄비가 아닌 여름비처럼 소나기가 쏴아아 아 쏟아지기도 하고, 여름이 한참 앞당겨진 것 같다.
안 그래도 평소에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올해는 이상하게 개화시기도 모두 빠르고, 꽃샘추위도 없었던 것 같다.
정원에 나와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노라면 옆집 이웃, 야로슬라브 아저씨와 자주 마주친다. 야로슬라브아저씨는 혼자 사시는 60~70 정도 되신 아저씨다.
야로슬라브Jaroslav, 봄이라는 뜻의 Jaro, 축하하다는 뜻의 slavit이 섞여 만들어진 이름일 것으로 추측한다.
아저씨의 집 양 옆으로는 오랫동안 텅빈 집이었는데 이 아저씨의 왼쪽으로는 젊은 체코인 부부가 작년에 새로 들어와 집을 철거하고 지금도 새로 집을 짓고 있고, 이 아저씨의 오른쪽으로는 바로 우리다.
오랫동안 안그래도 혼자 사시는 분이 양옆에 아무 이웃도 없이 재미가 없으셨을 것 같다. 가끔 마주칠 때 반갑게 인사를 하면 우리는 아파트에 살았어서 뭔가 오랫동안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었는데 지나치며 얼굴만 마주치면 인사하는 이웃이 생긴 것에 오히려 정겨운 마음이 든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이웃과의 소통이다.
오랫동안 양옆으로 이웃도 없이 지내시던 야로슬라브 아저씨는 그동안 지루하셨던 것일까 자주 인사하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한번 붙잡히면 기본 10분이 수다시간이 되기도 한다.
특히 쿠비와 야로슬라브아저씨와 많이 가까워져 만나면 기본 10분, 20분을 수다시간을 갖다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가끔은 도대체 집은 언제 완성되는 거냐고 우리를 놀리시는 게 다반사다. 안 그래도 더위 때문에 그리고 속도 때문에 슬슬 걱정이 되는 찰나 이런 놀림을 받으면 걱정은 증폭이 된다.
사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변화는 거의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왜이리 바빴던 것일까?
우선 집짓기에 필요한 각종 툴을 구입하느라 바빴고
집 짓기에 필요한 목재와 재료들을 사모으느라 바빴고
구청 허가를 위한 집 설계도면은 거의 다 끝나가고
정글 같은 정원에 풀을 베고 나무를 베고.. 풀이 금방자라 또 자라면 또 베고,
울타리 정비를 다시하기 위해서 우리 땅이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정확한 계측을 했고
마당에 모아뒀던 풀과 나무들을 태웠고
퇴비를 위한 컴포스트를 만들었고
집에 기반을 확인하기 위해 집안 바닥을 뚫어 확인을 하고
지붕까지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작업대를 만들었으며
지붕에 연결된 굴뚝을 철거하였고
철거된 굴뚝때문에 구멍 난 지붕을 메꾸었다.
쿠비의 굴뚝 작업을 돕기위해 사다리를 잡고 가만히 서있는 나를 보며 아저씨가 멀리서 다가오며 역시나 한마디 하신다.
사다리 잡고 가만히 서있으려니 참 열일한다고 ㅋㅋ 나를 놀리는 한마디다.
그리고는 헬멧을 쓰고 있는 쿠비에게는 떨어져도 안 죽는다며 또 쿠비가 겁쟁이인 것처럼 쿠비를 놀리신다.
처음에는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우리를 놀리려고만 할까, 좀 이상한 아저씨인것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아무런 눈에 띄지 않은 우리 집의 진행 상황을 보며 야로슬라브 아저씨가 우리를 놀리더니, 어제 드디어 굴뚝이 없어지자 '어?? 드디어 굴뚝이 사라졌네??'라고 하시며 멀리서 일하다 말고 가까이 오시며 쿠비와 또 수다시간을 가지신다.
이렇게 매번 수다시간이 길어지니까 집 고치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나는, 아저씨 두고 보세요. 아무리 우리가 느려터져도 우리가 쉬지 않고 뭔가 만들어낸다니까요? 하며 마음을 다짐한다.
하지만 툭하면 우리를 약 올리는 아저씨가 놀리시기만 하는 건 아니다.
야로슬라브 아저씨는 마당에 좀 심으라며 양파를 한 망 (속에는 거의 양파가 최소 백개는 넘게 들어있었다) 갖다 주시기도 하고, 식물에 대해 잘 모르는 나와 꾸비를 위해 이건 잡초니 베어버리고 저건 몸에 좋은 거니 이왕이면 두고 키우라던지, 여러 조언도 많이 주시며 집에서 닭이 알을 낳았다고 집계란도 갖다 주시면서 나를 은근히 헷갈리게 하시더니 가끔은 매일매일 와서 일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울타리에서 가까이 심어진 목말랐을 튤립에 우리 대신 물을 주시기도 하신다.
안 그래도 매일같이 회사로 바쁜데 날도 덥고 집 때문에 더 바빠서 기운 빠져하는 쿠비를 위해 특별 달다구리 디저트를 만든다.
한입에 쏙 들어가 살살 녹아 없어져 버리는 쿠비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슈크림볼
슈크림볼을 잔뜩 만들어 시원한 냉장고에 하루 묵혀둔 후, 쿠비 실컷 먹을 것 따로 남겨놓고 이웃 야로슬라브 아저씨께 갖다 드렸다. 이 삭막한 시대에 얼마 만에 하는 이웃 간의 음식 나눔이었던가.
우리가 슈크림볼을 가지고 오는 건지도 모르는 야로슬라브 아저씨가 멀리서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뻗어 흔들며 "아호이~!"인사하며 웃으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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