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도 예기치 못한 이상한 일들도 일어나기 마련인데 나를 아는 사람 없는 해외에서는 오죽할까?
일단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는 뜻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해외에 나가서 정착하려는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을 만나 이미 정착한 한국인에게 도움을 받거나 모국어로 소통하여 향수병을 잊어보려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씁쓸했던 점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여기서 알고 지내는 좋은 동포들이 많다. 같은 동포끼리 큰 도움을 주시고 정 많은 분들이 더 많다. 그저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일 뿐, 오해가 없길 바란다.
바쁜 점심시간에 한국인 중년 커플이 따로따로 두 커플이 방문하셨다. 이분들은 식사를 하시다가 서로 한국인임을 확인하고 너무 반가워하시며 식사 후에도 오래도록 수다를 이어나가셨다. 한 분은 은사님이라는 칭호를 쓰시는 걸 보니 교회에 다시시는 분인 것 같았다. 들리는 대화에 의하면 이 도시는 도시자체가 한국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만나면 너무 반갑다. 또 한국사람 비율이 너무 없어 한국 교회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쉽다.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아주머니 두 분이 일하느라 바쁜 나에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우리 같은 한국사람끼리 여기서 이렇게 만난 것도 너무 반가운 데 갈 교회가 없으니 주말마다 가게를 열어달라.
나는 귀를 의심하였다. 아무리 반가운 한국 손님이라고 하지만 나로선 오늘 처음 본 아주머니인데 이분 종교 활동을 위해 가게를 내가 왜 열어드려야 하지?
너무 반가운 마음에 흥분된 상태일 수 있겠다 싶어서 돌려서 거절을 하였다. "저는 토요일 일요일도 가게에서 손볼 것도 많고 청소도 해야 하고 월요일에 팔아야 할 것도 준비해야 해서 많이 바빠요."
아주머니들은 개의치 않으시며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일할 거 있으면 일해요 우리는 그냥 여기 한국사람들 모아놓고 만나면 되니까, 만날 곳이 없어서 그래~ 아니면 그냥 열쇠를 하나 우리한테 주면 우리가 필요할 때 와서 쓸게."
나한테 가게 열쇠를 맡겨놨나?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분들은 오랜만에 동포를 만나 아주 반갑고 갑자기 편해지신 모양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나를 편하게 생각해서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이렇게 없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하지만 이런 에피소드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어느 날 약 여덞명남짓인원의 손님이 들어왔다. 한국사람이 절반정도였고 나머지는 베트남 사람들 같았다. 이들 중 한 명의 한국인이 메뉴를 둘러보더니 "일단 봐봐야 하니 다 시켜봐~" 하더니 정말로 모든 메뉴를 하나씩 다 시켰다. 순진한 나는 기쁜 마음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음식을 내주었다.
우리 가게는 몹시 작았다. 손님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속닥이는 소리를 빼고는 웬만해서 다 들렸고 손님의 행동이 웬만해서는 한눈에 보인다.
음식이 서빙되고 이들의 하는 대화가 다 들렸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같은 도시에 한식당을 차리기 위해 우리 집이 어떤지 확인하려 온 사람들이었다.
나 혼자서만 이곳에서 한식당을 하라는 법은 없으니 내가 할 말은 없지만 내가 가까이서 다 들을 수 있는 곳에서의 이들의 행동은 놀라웠다.
일단 음식부터 해부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밥을 요렇게 해서 주니까 우리는 요거보다는 조금 더 주고, 우리도 이거랑 이거랑 이렇게 하고 요거는 요렇게 하자. 그리고는 테이블이며 계산대며 둘러보며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다 저런 식으로 하면 되겠다. 이야기를 하며 사진으로 남겨두고, 접시를 뒤집어 식기의 브랜드를 확인하고 브랜드를 잊지 않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이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계산을 하고 떠났다. 이중 몇몇은 건네는 인사에 대꾸도 않고 떠났다. 이들의 테이블을 정리하려 갔더니 사실 식사는 거의 하지도 않고 연구만 하다간 모양이었다. 김밥들은 다 뜯어 재료 분석이며 뭘 이런 것을 한 것 같고 이들이 우리 가게에 온 목적이 식사가 아닌 것은 명확하였다.
그러고는 며칠 뒤 목걸이와 금반지를 주렁주렁한 중년의 아주머니와 저번에 왔던 멤버 중 셰프로 보이는 사람이 같이 와서 음식을 시키고는 대화를 하였다. 금반지를 여러 개 한 그 중년의 아주머니가 실제 사장인 거 같았고 셰프로 보이는 남자에게도 여러 가지 지시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주 손가락으로 우리 가게 여기저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하고 우리 가게 가구들을 밑에서 보는 둥 여기저기 만져보기도 했다.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하면 될 것 같고..." "저거 봐봐, 한국애들이 요런 거 요런 거는 잘한다니까?"
애석하게도 이 식당을 운영하는 그 한국애는 다 듣고 있었다. 사실 엿들으려고 하려던 것도 아니고 내가 계산대에 서 있는데 계산대 앞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 안 들리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이 금반지 아주머니는 프라하에서 이미 커다란 한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란다.
그리고 이내 이들은 이 동네 가장 중심가에 규모 있게 오픈을 한 것 같았다. 가장 중심지이고 유동인구도 엄청 많아서 월세가 비싸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일을 하느라 이 분들이 오픈한 곳에 가볼 시간조차 없었는데 굳이 가보지 않아도 어떤지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국음식 좋아하는 손님 중 한 분이 그곳에 방문했다가 사진을 찍어다 내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또 어떤 손님은 나에게 돈 많이 벌어서 센터에도 가게를 냈냐고 물으셨다. 그 가게와 겹치는 것이 많아 우리 가게 분점으로 착각하신듯했다.
식당에서 어떠한 식기를 쓸지 고민하며 적당한 식기를 찾다 보면 생각보다 식기 브랜드가 엄청 많구나 하고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우연의 일치가...! 그분들은 내가 쓰고 있는 똑같은 브랜드의 그중에서도 똑같은 라인의 똑같은 식기를 쓰고 있었다. 체코브랜드도 한국브랜드도 아니고, 체코에서 많이 쓰는 브랜드도 아니어서 정말로 우연의 일치로 같은 식기를 찾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불현듯 저번 방문에 그릇을 들고 사진을 찍던 그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식기뿐만이 아니었다. 가게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한 계산대 바의 모습도 똑같았다.
우리 가게처럼 작고 특별히 꾸며놓은 놓은 것 없이 최대한 깔끔하고 깨끗하게 해놓으려고 한 가게에서 여기서 뭔가를 캐치해 간다는 것도 웃음이 났고 작은 가게가 잘 나가는 큰 가게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다른 데서 운영도 잘하시는 분이 겨우 30대 초반의 여자 혼자서 운영하는 작은 가게를 참고한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누구나 이 도시에서 한식당을 차려도 된다. 한국음식이라는 제한이 있으니 메뉴가 겹쳐도 상관없다. 그리고 사전 조사, 시장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경쟁이 될 만한 곳에 가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행동은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실망스러웠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서 살아가는 사회여야지 되는대로 남의 것도 제멋대로 취하여 돈만 벌면 그만인 정글은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이곳에서 한식당을 차리려고 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하면 나로선 도와줄 의향이 충분히 있다. 점점 이렇게 서로 간의 예의가 없어지는 사회가 당연시되어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다.
누구라도 해외에서 식당을 계획하시는 분이 있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내 이익을 취하는 비즈니스임에는 분명하지만 해외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자그마한 창구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외국에서 한국식당을 하실거면 정말 정말 멋진 식당을 하셨으면 좋겠다. 정말로 맛있는 한국음식을 많이 만들어 외국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한국음식이 얼마나 맛있고 얼마나 깨끗하고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한국 음식문화가 발전했는지.
하지만 남의 좋아 보이는 것들을 배우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렇게 되는 대로 갖다 쓰지는 말아야 한다. 내 아이디어와 나의 능력치로 잘하기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해외에서의 한국인 커뮤니티는 작다. 소탐대실로 내 얼굴에 침뱉는 일은 하지 말아야한다.
또한 나처럼 이런 것들에 전전긍긍하는 멘탈보다는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와 멘탈력을 가지시라고 조언을 하고 싶다. 사실 내가 겪은 일들은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다. 단지 해외 사는 한국인들에게 실망하고 이들을 너무 믿지 않는 계기가 될 뿐.
어차피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 없는 해외에서 이런 일에 하나하나 연연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마 화병으로 제명에 살기 어려울 것이다. 살아가기도 각박하고 삭막해지는 시대에 지킬 건 지키며 서로가 서로를 짓밟기보다는 끌어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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